‘1000억 쏟아 민족주체 영재교육’ 민사고 최명재 이사장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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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억 쏟아 민족주체 영재교육’ 민사고 최명재 이사장 별세
  • 신현지 기자
  • 승인 2022.06.27 14:35
  • 호수 38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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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만 먹여 살릴 창조적 영재 키운 큰 장사’.. ‘위기마다 돌파한 공교육 원조 롤모델’

[베리타스알파=신현지 기자] 조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대한국인’ 영재양성을 목표로 민족사관고등학교(민사고)를 설립한 최명재 이사장이 26일 오전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5세. 고인은 87년 파스퇴르유업을 창업한 뒤 오랜 숙원이던 학교 설립에 나섰다. 민족주체성 교육을 표방하는 민사고를 개교하고 1000억에 가까운 파스퇴르의 수익금을 민사고 설립과 운영에 투입했다. 

민사고는 ‘출세하기 위한 공부를 하지 말고, 학문을 위한 공부를 하자’는 교훈 아래, 단순히 ‘입시 명문’이 아닌, 미래인재를 길러내는 요람으로서의 역할을 계속 고민해왔다. 고인은 “나는 장사꾼이다. 기왕 장사를 시작한 바에는 큰 장사를 하려고 한다. 창조적인 천재 한 사람이 수백만 명을 먹여 살린다고 한다. 학교를 만들고 영재를 교육해 장차 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일하게 한다면 나로서는 수천, 수만 배 이익을 얻는 셈이 아니겠는가”라고 강연 등에서 말해왔다. 현재 전국단위 자사고인 민사고는 우리나라 수월성 교육을 이끄는 공교육 원조 롤모델로 손꼽힌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8일이다. 장례는 학교장으로 치러지며, 영결식은 28일 오전9시 민사고에서 열린다. 장지는 민사고가 자리한 횡성군 덕고산 자락이다. 유족으로 부인과 장남인 최경종 민사고 행정실장 등 2남 2녀가 있다.

최명재 이사장 /사진=민사고
최명재 이사장 /사진=민사고

<기업인에서 교육인으로.. ’민족 주체성 교육의 꿈’> 
고인은 1927년 전북 김제 만경면 화포리에서 태어나 만경보통학교, 전주북중을 졸업했다. 서울대 경영대학의 전신 경성경제전문학교를 거치고 상업은행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한 뒤 택시 운전사로 전직했다가 1960년대 운수기업 ‘성진운수’를 세웠다. 1970년대에는 이란에 진출해 유럽과 중동을 오가는 물류운송업을 운영하기도 했다. 물류 운송으로 번 자금을 이용해 1987년 강원 횡성에 파스퇴르유업을 설립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저온살균 우유를 도입했고, 국내 기업 중 처음으로 미군에 우유를 납품하면서 품질을 인정받았다. 기존 유가공업체와 ‘우유전쟁’을 벌인 끝에 출시 1년 만에 매출을 10배 늘리며 우유업계 4위에 올라섰다.

고인은 전국 인재를 선발해 점차 퇴색하는 민족혼을 살리고 조국의 미래를 이끌어 갈 ‘대한국인’을 양성하겠다는 뜻으로 1996년 민사고를 세웠다. 1936년 전답을 팔아 사립 보통학교를 세운 부친 최현묵씨로부터 사학 건립의 꿈을 물려받은 결과다. 고인은 민사고 개교 시 ‘민족 주체성 교육’을 통해 세계적인 지도자와 노벨상을 탈 수 있는 인재를 키우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기업이윤을 혈족이나 연고자에게 물려주지 않고 전액을 민족 주체성 교육과 선진 문명의 한국화에 투자해 전 생애를 교육에 바치겠다”고 선언했다. 민사고 설립 초기에는 직접 교장을 맡아 학교를 이끌기도 했다. 영국의 이튼스쿨 등 전통 있는 외국 명문고들을 두루 견학한 후 국적 있는 학교를 세우고자 건물에는 기와를 앉히고 곳곳을 ‘조국’과 ‘태극기’로 장식했다. 정문에는 충무공 이순신과 다산 정약용의 동상을 세웠다. 노벨상을 받을 미래 민사고인을 위해 ‘노벨상 좌대’ 15개를 학교진입로에 나란히 설치해뒀다. 학생들과 교사들은 개량한복을 입었다.

- 위기 극복 역사.. 재정 위기부터 내신대란까지
고인은 파스퇴르를 경영하면서 얻은 수익금 대부분을 민사고 설립과 운영에 쏟아부었다. 투자금의 규모는 1000억원에 달한다. 초기엔 파스퇴르유업 수익을 매년 30억~50억원 민사고에 투자하면서 우수 학생을 선발해 기숙사비를 포함, 교육비를 받지 않고 운영했다. 하지만 개교 3년째인 1998년 IMF 외환위기로 학교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교사들이 급여를 받지 않고, 학부모들이 자진해 기숙사비를 내며 교육을 이어갔다.

민사고가 겪은 위기 중 또 하나는 일명 ‘내신대란’이다. 대입 내신강화로 학생 수가 적은 민사고 학생들이 국내 상위권 대학에 진학하기 어려운 구조가 된 것이다. 민사고는 시야를 해외로 넓히면서 위기를 기회로 바꿨다. 민사고 역시 해외유학엔 서툴렀던 때지만 교사들이 해외에 직접 발로 뛰며 현장에서 배웠다. 그 결과로 학생들을 아이비리그에 진학시키며 선도적인 대응책을 보였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미국 고교를 제외하고 전 세계에서 아이비리그 대학에 가장 많은 학생을 진학시키는 학교로 민사고를 소개하기도 했다. 민사고의 적응력은 현재 수시 최대 전형인 학종에서도 위력을 발휘했다. 해외대학의 입학사정관제에 일찍이 눈 뜬 결과, 국내대학에 도입되기 시작한 학종에서도 성과를 거두기 시작한 것이다. 대입이 교육 방향을 고민하고 변화하기 이전부터 새로운 교육의 방향을 찾아 걸어가고 있었던 행보가 결과로 드러난 셈이다.

- 융합영재교육의 새로운 길
민사고의 위기와 도전은 현재진행형이다. 전 정부의 ‘자사고 폐지 정책’으로 인해 풍전등화의 위기에 몰리면서 2017년 융합영재학교로 전환을 청원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관련 법안과 틀이 없다는 이유였다. 교육부와 교육청의 지원은커녕 정책 구현을 통한 대책 마련이 이뤄지지 않는 셈이다. 때문에 민사고는 2018년부터 학교 자체적으로 융합영재교육을 구현하고 있다.

민사고의 융합영재교육은 5년 가까이 내공을 쌓아왔다. 민사고는 영재학교에서도 하지 못하고 있는 융합영재교육을 실시하고자 끊임없이 연구하고 실천해오고 있다. ‘수학 과학’에 영재교육 범위를 한정한 것이 아닌 ‘인문 사회’ 영역에서도 영재교육을 실시하는 국내 초유의 형태다. 민사고의 융합교육이 가능한 것은 교사 전원이 석박사 출신으로 수준이 높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원하는 주제에 대해 심화된 내용을 가르칠 수 있는 교육 환경이 조성돼 있다.

뿐만 아니라 2025년 본격 도입되는 고교학점제도 이미 10여 년에 걸쳐 견고히 다져왔다. 민사고는 1996년 개교이래 고교학점제와 맥을 같이하는 ‘교과교실제’를 운영해왔다. 고교학점제가 대학처럼 학점을 이수해 고교를 졸업하는 제도라면 교과교실제는 학생들이 전용 교실로 이동해 수업을 듣는 제도다. 민사고의 모든 교사들은 교무실 없이 개별 연구실에서 5~7명의 학생과 수업한다. 학생들은 듣고 싶은 수업을 신청하고, 원하는 수업도 만들어 달라고 요청할 수 있어 수업만 200여 개다. 특히 이는 타 학교에서도 본보기로 작용될 수 있다. 앞서 수년간의 연구와 수없이 많은 교사들의 고민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표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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